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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글읽기

Hey Jude
  • Aritst : The Beatles
  • Genre : Pop
  • Playing Time : 7:01
  • Album Title : 1967-1970
  • Release Date : 1973.04.19
Artist Biography

비틀즈(The Beatles)는 1960년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된 록 밴드이다. 1962년에 존 레논 (리듬 기타, 보컬), 폴 매카트니 (베이스 기타, 보컬), 조지 해리슨 (리드 기타, 보컬), 링고 스타 (드럼, 보컬)로 멤버가 확정되었다. 비틀즈의 음악은 스키플에 뿌리를 둔 1950년대 로큰롤에 기반하여 출발하였으나, 이후 포크 록, 싸이키델릭 록, 하드 록, 챔버 팝, 파워 팝, 프로그레시브 록, 쟁글 팝 등 여러 장르들의 탄생과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각 장르의 다양한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단순히 음악뿐 아니라 1960년대의 사회 및 문화적 혁명을 야기하기도 했다.

비틀즈는 초기에 레논, 매카트니, 해리슨,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베이스) 그리고 피트 베스트 (드럼)으로 구성된 멤버로 1960년부터 3년 동안 리버풀과 함부르크 클럽을 다니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1년 베스트가 밴드를 탈퇴해 새로운 멤버 링고 스타로 대체되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즈의 매니저로써 활동했는데, 밴드에 대한 큰 활약으로 다섯 번째 비틀즈 멤버로 종종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1962년 발매된 조지 마틴이 작곡과 프로듀서를 맡은 첫 싱글 〈Love Me Do〉는 영국 차트를 휩쓸었다.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거의 모든 곡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첫 싱글을 발매한 이듬 해에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66년부터 해체가 되는 1970년까지 세계를 휩쓸었다. 특히 1964년부터 북미 활동을 시작한 비틀즈는 미국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려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략)이라 일컫어졌다. 비틀즈는 1970년 공식 해산이 되었고,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펼쳤다. 멤버 중 레논은 1980년 뉴욕 집 근처에서 총에 암살을 당해 죽었고, 2001년 해리슨은 암으로인해 죽었다.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있다.

비틀즈는 1970년까지 총 12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했고, 세계적으로 10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려 가수중엔 최고의 기록이다.[1] 또한 미국 내에서만 1억 7천만 장 이상을 팔아치워 RIAA에 따르면 그 어떤 가수보다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고있다고 말했다.[2] 또한 비틀즈는 빌보드 핫 100 50년 역사상 1위 싱글이 20곡으로 가장 많이 1위를 차지한 가수로 기록되었고, 50여 곡 넘는 톱 40위권 싱글들을 만들어냈다. 비틀즈의 음반은 현재도 수요가 이루어지고있다. 비틀즈는 기록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비평가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밴드"로 불리고 있다.[3] 또한 이들은 그래미 상에서 7번의 수상을 비롯해 아이버 노벨로 어워즈, 영국 아카데미 작곡가 상 등에서 수상을 했다.

1999년 《타임》지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비틀즈를 선정했다.[4] 이후 35년 후인 2005년 미국의 연예산업잡지 버라이어티는 비틀즈를 20세기 연예인의 대표 우상(icon)이라 표현하였다.[5] 비틀즈는 단 한명도 악보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악상이 떠오르면 데모테잎에 기타로 주 선율이나 리프를 일단 녹음 한 뒤에 그걸 바탕으로 멤버들이 연주해가며 다듬어서 완성,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곡을 만들었고 악보에는 전혀 의지하지 않았다. 멤버들이 2008년 빌보드지는 '핫 100 차트(Hot 100 Chart)' 50주년을 기념하여 50년간 성공적인 차트 기록을 올린 아티스트들의 기록을 분석해 순위를 발표했고, 비틀즈는 1위에 올랐다. [6]

밴드 멤버존 레논 : 보컬, 리듬 기타 - 때때로 하모니카, 키보드, 베이스 기타 및 기타 악기 (1960-1970)
폴 매카트니 : 보컬, 베이스 기타 - 때때로 기타, 키보드, 드럼, 프루겔 혼 및 기타 악기 (1960-1970)
조지 해리슨 : 보컬, 리드 기타 - 때때로 시타르, 탐부라, 베이스 기타, 키보드 및 기타 악기 (1960-1970)
링고 스타 : 드럼 - 때때로 보컬, 작은북, 키보드 및 기타 악기 (1962-1970)
[편집] 전 멤버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uart Sutcliffe) : 베이스, 보컬 (1960-1961)
피트 베스트(Pete Best) : 드럼 (1960-1962)
[편집] 결성 (1957년 - 1960년)[편집] 쿼리맨의 결성1957년 3월, 쿼리 뱅크 그래머 스쿨을 다니던 존 레논은 "쿼리맨"(The Quarrymen)이라는 스키플 그룹을 결성한다.[7] 1957년 7월 6일, 레논과 쿼리맨은 기타리스트 폴 매카트니를 울튼이라는 교회 축제에서 만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폴 매카트니는 쿼리맨에 합류하게 된다.[8]

[편집] 조지 해리슨의 합류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은 리버풀 인스티튜트의 학교 버스에서 만나 친해졌고, 폴 매카트니는 1958년 2월 6일, 리버풀의 윌슨 홀에서 열린 쿼리맨의 공연에 조지 해리슨을 초대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된 매카트니의 설득 끝에, 해리슨은 1958년 3월, 다른 멤버들 앞에서 리허설을 마친 후 쿼리맨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했다. 당시 레논은 해리슨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가입을 거절했다고 한다.[9] 쿼리맨의 구성원은 계속적으로 변했으나, 레논과 그의 친구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베이스), 매카트니, 해리슨을 주축으로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10] 당시 이들이 부른 노래들의 녹음 자료 몇 개는 아직도 남아있다.

[편집] "비틀즈"의 탄생
비틀즈가 공연했었던 독일 함부르크의 인드라 클럽쿼리맨이란 밴드의 이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니 엔 더 문독스"(Johnny and The Moondogs), "롱 존 엔 더 비틀즈"(Long John and The Beatles), "더 실버 비틀즈"(The Silver Beetles) 등으로 바뀌어갔다. 이들은 1960년 8월 17일 마침내 "더 비틀즈"(The Beatles)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비틀즈라는 이름과 그 흔치 않은 표기(Be"a"tles)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대체적으로 이 이름은 레논이 지었다고 여겨지는데, 레논은 비틀즈라는 이름이 "딱정벌레들"(beetles; 이는 버디 홀리의 밴드 크리캣츠(The Crickets, 귀뚜라미들)를 따라한 것으로 추정된다)과 "beat"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장난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한 레논은 후에 "Beat-less"를 변형해서 만든 것이라 얘기하기도 했다.

신시아 레논은 존 레논이 "비틀즈"(Beatles)라는 이름을 "랜쇼 홀 바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로서 정했다고 주장했다. [11] 신시아에 따르면 존 레논은 그 장소에서, 'les beat'와 같은 "프랑스어 느낌의" 이름을 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11]

후에 존 레논은 한 잡지와의 1961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농담하기도 했다. "불타는 파이(flaming pie) 위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들은 "A"를 쓰는 비틀즈다!'(From this day on you are Beatles with an "A".)"[12] (후에 레논의 이 얘기는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 《Flaming Pie》의 제목과 동명의 곡에 영향을 주었다.)

[편집] 정식 활동(1963년 - 1970년)[편집] 데뷔비틀즈는 데뷔 이전 쿼리맨, 실버비틀즈 등으로 리버풀의 캐번클럽, 함부르크 등 일대에서 라이브 공연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눈에 띄어 그는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고, 그의 노력으로 비틀즈는 1962년 1월 1일 데카레코드의 오디션을 보지만 거절 당하였다. 그러다가 EMI의 팔로폰 레코드에서 일하는 녹음 기술자, 조지 마틴이 록밴드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엡스타인은 조지 마틴에게 찾아가 비틀즈의 시험음반을 들려주었고 조지 마틴은 오디션의 기회를 주었다. 비틀즈는 EMI의 오디션을 통과했으며, 팔로폰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던 중 드러머 피트 베스트는 마틴의 요구에 부흥하지 못했으며, 비틀즈 멤버는 그를 추방시키고 새 밴드를 찾고 있던 링고 스타로 드러머를 교체한다.

그 후 비틀즈는 녹음을 통해 드디어 첫 싱글 “Love Me Do / P.S I Love You”를 1962년 10월 4일 발표 했으며, 차트 17위까지 오르는 무난한 성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에는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로 차트 1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비틀즈는 이번엔 싱글형태가 아닌 10곡 이상으로된 정규앨범을 내자는 제안을 하였고 결국에는 첫 정규앨범 《Please Please Me》를 1963년 3월 22일에 발표 하였고, 그 주 차트 6위까지 올랐다.(후에 1위까지 오른다.) 이로 인해 비틀즈는 역사적인 데뷔를 할 수 있었다.

[편집] 초기Please Please Me 발표 이후 비틀즈는 싱글 “From Me To You”로 차트 1위를 달성하게 되고, 뒤 이어 발표한 싱글 “She Loves You”는 차트 1위는 물론, 영국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때부터 비틀매니아라는 신조어의 등장과 함께 비틀즈는 엄청난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1964년 2월 4일,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비틀즈“She Loves You”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두 번째 정규앨범 《With the Beatles》를 1963년 11월 22일에 발표했다. 그리고 싱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선주문 100만장이라는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 발표, 곧바로 차트 1위곡이 되었다. 그 후 비틀즈는 미국 진출을 노리며 미국에도 “She Loves You”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차례로 발표, 곧바로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였다. 비틀즈가 출연한 에드 설리번 쇼는 시청자 수 약 7천 3백만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1964년 3월 16일 비틀즈는 싱글 “Can't Buy Me Love”를 미국에 발표, 단숨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1964년 4월 4일 빌보드 싱글 차트에는 1위에서 5위까지의 노래가 모두 비틀즈의 노래가 된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였다.[13] 이로써 비틀즈는 영국 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까지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런 비틀즈의 활약을 평론가들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칭하고, 그에 해당하는 밴드들은 비틀즈 뿐만이 아니라 롤링스톤즈, 더 후, 킹크스(The Kinks), 애니멀스(The Animals) 등이 있다. 초창기 비틀즈는 미국의 초기 로큰롤 및 R&B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기도 했다.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칼 퍼킨스와 같은 백인 음악가들과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레이 찰스와 같은 흑인 음악가 양 쪽 모두에게 칭송받았다. 초창기 비틀즈 스스로의 작곡은 비틀즈 멤버 자신들이 영웅시하는 선배 음악가들의 양식을 모방한 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 후 비틀즈는 그들 특유의 타고난 음악적 악상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계속 승승장구 하였고, 정규 앨범 《A Hard Day's Night》을 1964년 7월 10일에 발매하고 앨범차트 1위를 차지, 그 앨범에 속한 곡들을 넣은 동명의 영화까지 찍게 되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최초로 전곡을 자작곡 했으며, 밥 딜런이나 버즈 등의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포크 록, 쟁글 팝 등의 장르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싱글 A Hard Day's Night 역시 1위를 차지했다.) 5년 동안 그들의 음악은 단순했던 초기 히트곡들에 비해 예술적인 꾸밈같은 것이 상당히 풍부해졌다. 노래를 만들면서 스튜디오 레코딩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들은 전례 없는 질의 레코딩들을 발표해 선보였고, 동시대의 어떤 뮤지션보다 앞선 효과들을 적용시켰다.

그들은 월드투어를 시작하여 세계 각지에서 콘서트를 가졌으나 무리한 일정으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힘들어졌다. (후에 조지해리슨은 이 시기가 가장 싫었다고 밝힌다.) 무리한 일정 속에 그들은 작곡하는 시간조차 부족했고 새 싱글 “I Feel Fine”은 괜찮은 평가와 함께 1위를 차지하였으나 1달 뒤 발매된 정규앨범 《Beatles For Sale》은 비틀즈 앨범 중 가장 안 좋은 앨범으로 평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고, 싱글 “Eight Days A Week”도 1위를 차지하였다.

커다란 인기 속에 그들은 점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과도한 인기에 싫증이 났다. 이러한 시기에 그들은 밥 딜런을 만나게 되고 지친 일정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던 그들의 음악적 수준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다.

[편집] 중기밥 딜런과의 만남 이후 비틀즈는 가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초기 그들의 노래 대부분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였으며 큰 깊이는 없는 가사들이었다.


영화 Help! 트레일러의 비틀즈그들은 싱글 “Ticket To Ride”를 발표,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1위를 차지하였다. 뒤이어 그들은 싱글 “Help!”와 동명의 정규앨범 《Help!》를 1965년 8월 6일에 발매하여 또다시 1위를 차지하였다. 앨범 Help!는 그동안 그들이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대중과 평론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싱글 "I Feel Fine" 에서 피드백 주법을 최초로 시도했던 비틀즈는 이 앨범 4번 트랙 "I Need You" 에서 와와 페달 또한 처음으로 시도하면서 더 후, 크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등의 음악가들의 하드록 사운드에 큰 영향을 끼친다. 또한 13번 트랙 “Yesterday”에서 대중음악 최초로 현악 4중주를 사용했다. 이 곡은 기존의 로큰롤 성향에서 탈피, 로큰롤에 새로운 예술성을 부여한 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Yesterday" 역시 싱글로 발매하여 1위를 차지했다. 1965년 8월 15일엔 북미투어의 일환으로 뉴욕에 위치한 야구 경기장인 Shea 스타디움에서 공연했다. 이 공연은 역사상 최초로 대형 경기장에서 치뤄진 공연이며 관중은 55,600명으로 이 또한 전례가 없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1965년 12월 3일, 비틀즈는 그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난 명반 《Rubber Soul》을 발매하였다. 포크 록적인 성향이 짙어진 이 앨범에서 그들은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 작사능력이 매우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틀즈는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중 한 곡도 싱글로 따로 발매하지 않았다. 이는 비틀즈 스스로의 결단이었다. 록큰롤 사상 처음으로, 앨범을 단순한 싱글 모음집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깨고, 앨범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록 역사상 최초의 명반인 앨범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비틀즈는 Rubber Soul이 발매되기 전 발표된 싱글 “Day Tripper / We Can Work It Out" 두 곡을 A사이드에 발매하여 모두 1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Rubber Soul에 넣지 않았다. 이 앨범은 싱글 중심이었던 당시 락 음악계를 앨범 중심으로 바꾸는데 큰 기여를 한다. Rubber Soul 수록 곡인 “Norwegian Wood”는 대중음악 최초로 인도악기인 시타르를 사용한 곡이다. (시타르는 그 후 대중음악에 자주 쓰이는 악기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 곡은 롤링스톤즈의 《Aftermath》 앨범 “Paint It Black”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퍼즈 베이스를 사용한 "Think For Yourself" 나 절제된 아름다움의 "Michelle", "Girl", 세련된 편곡과 바로크 풍의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 "In My Life" 등의 곡들은 그들의 예술적 성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Rubber Soul은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66년엔 싱글 “Paperback Writer / Rain”을 발매하였고 A사이드의 “Paperback Writer”는 1위를 차지했다. 이 싱글은 사이키델릭 록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특히 이 싱글을 통해 비틀즈는 그동안 인기에 비해 과소평가 받던 연주실력에 대해 재평가받았다. (특히 조지 해리슨과 폴 매카트니의 연주실력에 대해선 찬사가 끊임없이 있었다.) B사이드 곡인 “Rain”은 최초로 테이프를 역회전 시키는 백마스킹을 사용한 노래로 화제를 모았다.

1966년 8월 5일에는 7번째 정규앨범인 《Revolver》를 발매하였다. 비틀즈는 Revolver를 통해 싱글 “Paperback Writer / Rain" 에서 보여줬던 사이키델릭 록을 더욱 확장해 펼쳤고, 대중과 평론계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Revolver에 속한 곡인 “Eleanor Rigby”와 “Yellow Submarine”은 서로 확연히 스타일이 다른 곡인데 일부로 그 곡을 묶어 싱글로 발매 하여 두 곡 모두 1위를 차지하였다. 시타르 실력이 능숙해진 조지 해리슨은 4번 트랙 "Love You To" 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인도 음악 해석을 시작하며 라가 록(raga rock)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한다. “Eleanor Rigby”는 현악 4중주와 보컬만으로 이루어져있고, "Got To Get You Into My Life" 는 금관 악기(brass) 연주를 전면적으로 사용했다. "Yellow Submarine" 에는 수많은 효과음들을 삽입되기도 했다. 대중음악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다. Revolver에 속한 몇몇 곡들은 위에서도 말한 듯이 사이키델릭 록으로, 마약을 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그 당시 방송에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14번 트랙 “Tomorrow Never Knows”는 지금까지 최고의 사이키델릭 록 명곡으로 손꼽힌다. 스튜디오 기술의 엄청난 혁신을 보여주며 아트 록적인 요소가 보이는 이 앨범은 멤버들의 최상의 팀워크 안에서 수많은 장르의 음악들이 유기적이고 결속력 있게 흘러간다. 지금은 67년에 발매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앨범보다 이 앨범을 더 높게 평가하는 대중, 평론가들도 많다.

그리고 1966년에는 Revolver의 발매와 함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다. 비틀즈가 8월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이상의 순회공연을 중단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상업성을 포기해서라도 음악에 집중하겠다는 비틀즈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Rubber Soul이나 Revolver에 포함된 곡들이 그 당시에는 라이브를 하는데 준비시간이 너무 길고, 스튜디오에서 사용한 장비를 모두 무대로 가져올 수 없으니 사실상 완벽한 라이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이기도 하다.)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낸 비틀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싱글이라 불리는“Penny Lane / Strawberry Fields Forever”를 1967년 2월 13일 영국에서 발매했다. A사이드인 “Penny Lane”은 영국에선 2위를 했지만 미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67년 6월 1일 비틀즈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이라 불리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Revolver에서 보여주었던 사이키델릭 록을 더욱 전면적으로 보여주었고 대중음악의 예술성을 한단계 끌어 올린 앨범이라는 평을 받는다. 3번트랙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는 발매 당시 LSD를 나타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레논은 그 사실을 부인했다. (사실 현재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LSD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 레논이 자신의 곡이 금지곡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변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6번 트랙 “She's Leaving Home”은 당시 뉴욕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이 극찬하는 등 클래식계의 찬사가 이어진 작품이며, 13번 트랙 “A Day In The Life”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서로의 미완성된 작품을 결합해 만든 매우 혁신적인 곡이다. "Within You Without You" 에서는 탐부라, 딜루바, 스와르만달, 타블라, 시타르 등의 인도 악기들이 바이올린, 첼로 등의 서양 악기들과 결합되어 동서양 악기의 협연을 보여준다. 이 곡에서 5/4박자를 대중음악 최초로 시도했다.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는 초현실적인 주제의 곡으로, 독특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컨셉트 앨범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은 음악가들과 대중들에게 컨셉트 앨범 형식을 제시하였다. (최초의 컨셉트 앨범은 마더스 오브 인벤션의 Freak Out!이라고 인정받는다. 실제로 폴 매카트니가 이 앨범에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이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고,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 앨범이 발매된 67년도에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데뷔앨범 《Are You Experienced?》와 도어즈의 데뷔앨범 《The Doors》,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앨범《The Velvet Underground & Nico》과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등 기념비적인 앨범들이 많이 발매되어 대중음악 최고의 해로 불린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빌보드 차트에서 무려 15주간 1위를 차지했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는 싱글로 따로 발매된 곡이 없으며 대신에 비틀즈는 수록되지 않은 곡인 “All You Need Is Love”와 “Hello Goodbye”를 차례로 싱글로 발매하여 두 곡다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1967년 6월 25일, 비틀즈는 전세계 최초의 위성 생중계 방송 'Our World'에 출연했다. BBC 방송국과 기획한 이날 방송은 전세계 24개국에 생중계되었고 비틀즈는 여기서 "All You Need Is Love"를 연주했다. 그 해 8월 27일,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수면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고, 레논과 오노 요코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멤버들 간의 사이에 점점 금이 갔다. 11월 27일엔 미리 발표한 싱글 곡들과 미발표 곡들을 묶어《Magical Mystery Tour》를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그 당시엔 정규앨범 형태로 발매된게 아니라서 소위 명반 목록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비틀즈 사이키델릭 록 실험의 최종점이라고까지 재평가받고 있다.

[편집] 말기1968년 비틀즈는 싱글 “Lady Madonna”를 발표 후 별다른 활동없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비틀즈는 조지 해리슨의 추천으로 인도의 리쉬케쉬로 가게 된다. 마하리쉬 요기의 가르침을 받게 된 비틀즈는 그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지만, 마하리쉬 요기의 부도덕함에 큰 충격을 받은 그들은 다시 영국으로 오게 되었다. (나중에 이 사건은 오해로 밝혀졌다. 디팩 초프라의 증언에 따르면 조지 해리슨이 마하리쉬 요기가 비틀즈를 쫓아냈다는 사실을 들려줬다고 한다.[14]) 하지만 비틀즈는 인도에서 생활하며 1968년에 발매할 The Beatles 앨범에 수록될 곡들의 상당수를 작곡하였다. 여전히 순회공연을 중지한 상태에서 레논과 오노 요코와의 사랑은 더욱 발전되어 비틀즈에 대한 그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중기 이후로 비틀즈의 주도권은 레논에서 매카트니로 움직이고 있었다. 비틀즈는 점점 결속력을 잃어갔다 . 그 와중에도 8월 매카트니가 레논의 아들 줄리안 레논을 위해 쓴 노래인 “Hey Jude”를 발표해 9주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Hey Jude”는 그 당시 빌보드 차트 1위에 가장 오래 머무른 노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 가운데도 레논과 멤버들간의 불화가 끊임없이 일어났고, 비틀즈는 결속력 없이 멤버들의 솔로 곡들을 수록한 것처럼 느껴지는 앨범 《The Beatles》(통칭 White Album)을 1968년 11월 22일에 발표했다. 발매전 수록곡 문제로 멤버들이 서로 다투어 결국엔 2CD로 이루어진 30곡으로 발매되었으며 앨범 자켓도 정하지 못해 표지는 단순한 흰색 바탕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평론과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으며, 평론가들은 그 당시 모든 록 스타일이 이 앨범안에 들어있다며 극찬을 했다. White Album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더블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앨범도 역시 싱글로 따로 묶어 발매된 곡이 없으며 “Revolution 1”은 “Hey Jude”싱글의 B사이드 였던 “Revolution”을 편곡하여 만든 곡이라 할 수 있다. 전작들보다 어쿠스틱 성향이 강한 것이 이 앨범의 특징이다. 7번 트랙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는 조지 해리슨이 절친한 친구인 에릭 클랩튼에게 기타 연주를 부탁했고, 2CD 6번트랙 “Helter Skelter”는 헤비메탈의 시초라 불리는 곡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그 밖에 레논이 쓴 “Sexy Sadie”는 마하리쉬 요기를 비판, 풍자하는 내용의 곡이며, "Happiness Is A Warm Gun" 은 세개의 악상을 절묘하게 합쳐놓은 곡으로, 비틀즈의 숨겨진 명곡으로 불린다. 비틀즈는 이 앨범에서 "Ob-La-Di, Ob-La-Da" 는 스카 스타일, "Yer Blues" 는 블루스 록, "Rocky Raccoon" 은 컨트리, "Dear Prudence" 는 발라드, "Blackbird" 는 포크,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Me and My Monkey" 는 펑크, "Martha My Dear" 는 팝, "Birthday" 는 하드 록, "Revolution 9" 에선 실험적인 음악 콜라주까지 선보인다.

1969년 1월 17일 비틀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제로한 애니메이션 Yellow Submarine의 OST인 《Yellow Submarine》을 발매. 예전에 발표되었던 곡이나 보컬이 포함되지 않은 곡이 대부분이었으며 신곡은 몇 곡 되지 않았지만 인기가 높아 정규앨범으로 속하게 되었다. 비틀즈는 꾸준히 불화 상태에 있었으며 관계는 개선되려 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폴 매카트니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라는 뜻이 담긴 싱글 “Get Back”을 발표하여 1위를 차지하는 기쁨을 맞이 했다. 그리고 레논은 “The Ballad of John And Yoko”를 발표해 1위를 하였다.


애비로드 스튜디오그 후 비틀즈는 “Get Back” 앨범의 녹음을 마치고 발매하려 했지만 폴 매카트니는 이 앨범이 맘에 들지않았고 발매가 보류되었다. “Get Back” 앨범이 보류되자 비틀즈는 사실상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의 녹음에 들어갔고 서로 화합된 모습으로 녹음을 무사히 끝마쳤다. 그리고 애비로드 스튜디오 앞에서의 자켓촬영을 마친 후 1969년 8월 18일에 Abbey Road가 발매했고 무서운 인기로 1위를 차지하였다. 무그 신시사이저를 폭넓게 사용한 이 앨범은 비틀즈 앨범 중 가장 잘 꾸며진 앨범이라 평가 받는다. 특히 이 앨범의 백미인 일련의 짧은 곡들로 이어지는 메들리(트랙 9번 부터 16번까지, 일명 '애비로드 메들리')는 오페라적 요소를 띄며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Her Majesty”는 최초의 히든트랙이라 평가받는다. Abbey Road의 1번트랙과 2번트랙인 “Come Together”와 “Something”은 따로 싱글로 발매, 두 곡 모두 1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Something은 조지 해리슨의 최초 1위곡이다. 조지 해리슨은 이 앨범의 “Something”과 "Here Comes The Sun" 을 통해 자신의 커다란 음악적 성장을 보여줬다. 또한 링고 스타도 "Octopus's Garden" 으로 나름대로의 음악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존 레논이 작곡한 "Because" 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계속되는 성공 속에도 비틀즈의 결속력은 계속 떨어져 불화로 이어졌고, 레논은 더이상 비틀즈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비틀즈는 사실상 해체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고 이미 멤버들은 각자의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카트니는 비틀즈를 놓지 않았고 보류되었던 앨범인 Get Back을 조지 마틴이 아닌 필 스펙터에게 프로듀싱을 맡기며 결국에는 《Let It Be》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1970년 5월 8일에 발매 하였다. 싱글로 "Let It Be"를 발표, 1위를 차지하였고 후에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싱글로 발매하여 마지막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유명한 애플(기업) 옥상 공연이 포함된 영화 Let It Be가 개봉하였다.

《Let It Be》앨범이 발매되고 나서도 여전히 멤버들 간에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멤버들은 이미 각자의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다. 언론에서도 비틀즈의 해체를 기정사실화 하였다. 그리고 결국 폴매카트니가 1970년 4월 10일 데일리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해체를 공식발표하며 비틀즈는 공식 해체되었다.

[편집] 해체 이후 (1970년 - )해체 이후 공연이나 신곡을 녹음하는 등의 활동은 없었으나 1995년 시작된 앤솔로지(The Beatles Anthology) 기획에 맞춰 존 레논이 1977년 녹음한 미완성곡 'Free As A Bird'의 데모 테이프에 남은 세 멤버가 연주와 코러스를 덧입혀 비틀즈의 신곡으로 발표하였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유일한 재결성이 되었으며, 다음해 레논의 솔로 곡인 'Real Love'도 같은 형식으로 제작하여 비틀즈 버전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2001년 조지 해리슨이 사망함으로써 더 이상의 재결성은 불가능해졌다.

2000년에는 영국 및 미국에서 음악 차트 1위를 한 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1'을 발매, 1주일만에 360만장을 판매하여 세계에서 가장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3000만장 이상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3년에는 'Let It Be' 앨범을 리믹스하고 보너스 디스크 'Fly on the Wall'을 추가한 'Let It Be... Naked'를 발매했다.

2006년에는 태양의 서커스 배경곡으로 사용된 악곡을 모은 'LOVE'를 발매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비틀즈 자신이 출연하지 않은 매체의 배경 음악으로 비틀즈의 원곡이 사용된 최초의 사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지 마틴과 그의 아들 가일스 마틴이 공동 제작했다.

2009년 9월 9일에는 비틀즈의 정규 앨범에 'Magical Mystery Tour'와 'Past Masters'를 포함한 14 작품 CD 16장 분량을 디지털 리마스터 스테레오 음원으로 제작하여 발매했다. 1987년 CD화 시절 모노로만 발매되었던 4장의 초기 앨범을 스테레오로 발매했으며, 오리지널 모노 앨범을 담은 'The Beatles In Mono'도 같은 날 발매되었다. 또한 같은 날에는 음악 게임 'The Beatles : Rock Band'가 PS3, XBOX 360, Wii 용으로 발매되었다. 이 게임의 제작에는 조지 해리슨의 아들 다니 해리슨이 참여했으며 게임의 음원 및 앨범의 제작은 가일스 마틴이 맡았다.

[편집] 음악적 분석[편집] 음악 스타일레논과 매카트니는 밴드의 주요 곡들을 작곡했으며, 초창기에는 작곡면에서 큰 활약은 없었던 해리슨은 후기 비틀즈에서 큰 공헌을 했다. 처음 비틀즈가 레코딩을 시작한 이래,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모든 곡 레코딩을 시작부터 끝까지 맡아왔다.

[편집] 영향
엘비스 프레슬리비틀즈는 주로 다음 가수(그룹)에게 영향을 받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 비틀즈는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많은 수의 엘비스 커버를 녹음했다. 또한 도큐멘터리 앤솔리지에서 비틀즈의 멤버 4명은 프레슬리를 스승(guru)라 칭한 바 있다.
척 베리 - 비틀즈는 "Roll Over Beethoven"이나 "Rock and Roll Music"과 같은 척 베리의 노래를 그들의 초기 앨범에 수록했었고, 라이브로 공연한 적도있다. 레논이 처음 베리를 만났을 때, 레논은 "척 베리! 당신은 내 영웅이에요!"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도 있다.
비비 킹 - 킹은 비틀즈에 블루스적인 성격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향은 "Get Back"이나 "I Me Mine"에서의 기타 연주에서 발견할 수 있다.
버디 홀리 - 초기에 영향을 미쳤다. 비틀즈는 "Words of Love"를 레코드 한 적 있다. 또한 비틀즈라는 이름이 홀리의 배킹 그룹 크리켓츠(The Crickets)에서 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다.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Beetles를 제안했고, 레논은 이를 Beatles로 살짝 변형했다.
밥 딜런 - 밥 딜런과 비틀즈는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였다. 밥 딜런은 비틀즈에게 영향을 받아서 기존의 포크에 락캔롤을 접목시키려는 시도에 눈을 떴고, 비틀즈는 딜런의 영향을 받아서 가사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Help!),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Rubber Soul)과 같은 곡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딜런은 뉴욕의 호텔방에서 비틀즈에게 마리화나를 처음 소개시켜 준 사람이기도 하다.
에벌리 브라더스 - 레논과 매카트니는 돈 에벌리와 필 에벌리의 독특한 이중창을 모방했다. "Love Me Do"나 "Please Please Me"는 에벌리의 "Cathy's Clown"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Two of Us"는 완벽한 에벌리 스타일 노래였다.
초기 모타운 음악 - 비틀즈는 초기에 배럿 스트롱의 모타운 레코딩인 "Money (That's Wat I Want)"나 마블릿츠의 히트곡 "Please Mr. Postman"을 카피한 곡을 앨범에 수록한 적이 있다.
리틀 리처드 - 초기의 몇몇 곡들은 리처드의 "Long Tall Sally"에서와 같은 가성 스크림이 등장한다. 1962년, 리처드는 함부르크에서 비틀즈와 교제한 적 있으며, "Long Tall Sally"는 초기 비틀즈 콘서트에서 꾸준히 등장했던 곡이다.
[편집] 발매 앨범 (영국)다음은 영국에서 발매된 정규 스튜디오 앨범이다. 컴필레이션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앨범명 발매일 차트 순위 앨범의 수록곡
Please Please Me 1963. 3. 22. #1 I Saw Her Standing There, Misery, Anna (Go to Him), Chains, Boys, Ask Me Why, Please Please Me, Love Me Do, P.S. I Love You, Baby It's You,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A Taste of Honey, There's a Place, Twist and Shout
With the Beatles 1963. 11. 22. #1 Side one: It Won't Be Long, All I've Got to Do, All My Loving, Don't Bother Me, Little Child, Till There Was You, Please Mr. Postman
Side two: Roll Over Beethoven, Hold Me Tight, You Really Got a Hold on Me, I Wanna Be Your Man, Devil in Her Heart, Not a Second Time, Money (That's What I Want)
 
A Hard Day's Night 1964. 6. 10. #1 Side one: A Hard Day's Night, I Should Have Known Better, If I Fell, I'm Happy Just to Dance With You, And I Love Her, Tell Me Why, Can't Buy Me Love
Side two: Any Time At All, I'll Cry Instead, Things We Said Today, When I Get Home, You Can't Do That, I'll Be Back
 
Beatles for Sale 1964. 12. 4. #1 No Reply, I'm a Loser, Baby's in Black, Rock and Roll Music, I'll Follow the Sun, Mr. Moonlight, Medley: Kansas City w/ Hey, Hey, Hey, Hey, Eight Days a Week, Words of Love, Honey Don't, Every Little Thing,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What You're Doing, E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Help! 1965. 8. 6. #1 Help!, The Night Before,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I Need You, Another Girl, You're Going to Lose That Girl, Ticket To Ride, Act Naturally, It's Only Love, You Like Me Too Much, Tell Me What You See, I've Just Seen a Face, Yesterday, Dizzy Miss Lizzie
Rubber Soul 1965. 12. 3. #1 Drive My Car,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You Won't See Me, Nowhere Man, Think For Yourself, The Word, Michelle, What Goes On, Girl, I'm Looking Through You, In My Life, Wait, If I Needed Someone, Run For Your Life
Revolver 1966. 8. 5. #1 Side one: Taxman, Eleanor Rigby, I'm Only Sleeping, Love You To, Here, There and Everywhere, Yellow Submarine, She Said She Said
Side two: Good Day Sunshine, And Your Bird Can Sing, For No One, Doctor Robert, I Want to Tell You, Got to Get You Into My Life, Tomorrow Never Know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6. 1. #1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Getting Better, Fixing a Hole, She's Leaving Home,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Within You Without You, When I'm Sixty-Four, Lovely Rita, Good Morning Good Morning,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eprise), A Day in the Life
The Beatles (혹은 "White Album") Apple Records 1968. 11. 21. #1 Side one: Back in the U.S.S.R., Dear Prudence, Glass Onion, Ob-La-Di, Ob-La-Da, Wild Honey Pie, 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appiness is a Warm Gun
Side two: Martha My Dear, I'm So Tired, Blackbird, Piggies, Rocky Raccoon, Don't Pass Me By,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I Will, Julia
Side three: Birthday, Yer Blues, Mother Nature's Son,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Me and My Monkey, Sexy Sadie, Helter Skelter, Long, Long, Long
Side four: Revolution 1, Honey Pie, Savoy Truffle, Cry Baby Cry, Revolution 9, Good Night
 
Yellow Submarine 1969. 1. 17. #3 Yellow Submarine, Only A Northern Song, All Together Now, Hey Bulldog, It's All Too Much, All You Need Is Love
Side two: Pepperland, Sea Of Time, Sea Of Holes, Sea Of Monsters, March Of The Meanies, Pepperland Laid Waste, Yellow Submarine In Pepperland
Abbey Road 1969. 9. 26. #1 Side A: Come Together, Something, Maxwell's Silver Hammer, Oh! Darling, Octopus's Garden, I Want You (She's So Heavy)
Side B: Here Comes the Sun, Because,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Sun King, Mean Mr. Mustard, Polythene Pam,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Golden Slumbers, Carry That Weight, The End, Her Majesty
 
Let It Be 1970. 5. 8. #1 Two of Us, Dig a Pony, Across the Universe, I Me Mine, Dig It, Let It Be, Maggie Mae, I've Got a Feeling, One After 909, The Long and Winding Road, For You Blue, Get Back

[편집] 기타1993년, 고생물학자 엣지콤비(Edgecombe)와 채터튼은, 화석 삼엽충 종들에 애벌런처러스 레노니(Avalanchurus lennoni), 애벌런처러스 스타리(Avalanchurus starri), 스트러스치아 메카트니이(Struszia mccartneyi)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비틀즈 멤버 4명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소행성대의 궤도를 돌고 있다.
2009년 3월, 리버풀 호프 대학 석사과정에 '비틀즈 학과'가 개설됐다[15].

Lyrics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이봐, 쥬드. 그다지 언짠게 생각하진 마
슬픈 노래를 좋은 노래로 만들어 보자구
그녀를 자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기억해
그러면 자네는 더 좋아질 수 있을 거야


Hey Jude Don't be afraid
You were made to go out and get her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The you begin to make it better

쥬드. 두려워 하지마
자네는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어 있는 거라네
그녀를 자네 피부 안으로 깊이 들이는 순간
자네는 더 좋아지게 될 거야

And anytime you feel the pain
Hey Jude, refrain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s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
By marking his world a little colder

쥬드. 고통이 찾아들면
제발 그만 두게나
이 세상의 모든 짐을 자네 혼자
짊어질 순 없는 거야
세상살이를 차갑게 받아들이면서도
침착한 척 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Hey Jude Don't let me down
You have found her, now go and get her
Remember to let get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이봐, 쥬드 날 실망시키지 말아줘
이제 그녀를 찾았으니 가서 받아들이는 거야
그녀를 자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기억해
그러면 그대는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So let it out and let it in
Hey Jude begin
You're waiting for someone to perform with
And don't you know that it's just you
Hey Jude, you'll do
The movement you need is on your shoulder

그러니 희망을 가져
쥬드. 시작해 봐
자네는 인생을 함께 시작할 사람을 찾고 있자나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쥬드 바로 자네야
쥬드. 자네는 하게 될 거야
그대가 취할 행동은
자네에게 달려있어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under your skin
Then you can begin to make it better


쥬드. 그다지 언짠게 생각하진 마
슬픈 노래를 좋은 노래로 만들어 봐
잊지 말고 그녀를 자네의
마음속에 들어오게해
그러면 좋아지기 시작할 거야